한국의 도시 서울특별시 역사 - 1962년 대확장
1961년 5.16 군사정변 이후 서울특별시는 국무총리 직속이 되었으며, 서울 특별시장은 국무회의에 참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62년 12월 11일에 서울특별시 면적의 대대적인 확장이 이루어져 오늘날 서울시 모양새의 기반이 되고 있습니다. 이때에도 동이 아닌 리로 편입되었으며, 이듬해 2월 1일에 동으로 개칭되었습니다. 아카 라이브 '1963년 서울특별시 법정동, 행정동, 구 출장소' 당시 정부가 서울시 편입 대상지를 물색하기 위해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지리학과에 지역 조사를 위탁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대규모로 확장하고 나서도 뭔가 아쉬웠던지 1963년 9월 17일에 서울 편입을 염두에 두고 경기도 일부 지역도 서울시 도시계획에 포함시켰습니다.(건설부 고시 제547호 원문) 참고로 1963년 서울시 신규 편입지들이 서울시 도시계획구역에 편입된 것은 1963년 8월 28일입니다.
사실 1962년 서울 대확장에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습니다. 서울 대확장 계획에 대해 박경원 내무부 장관과 자신의 땅이 뺏길 게 뻔한 걸 알만한 박창원 경기도지사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으나 당시 윤태일 서울 특별시장이 군사정권의 실세였다는 버프로 내무부 장관과 도지사와의 기싸움에서 승리하여 대확장을 단행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강남 개발을 담당했던 모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이때 서울 대확장이 단행 안 되었다면 강남 개발이 지지부진했을 거라고... 그리고 시흥군 동면(지금의 금천구, 관악구)은 원래 서울시 편입 대상지가 아니었는데, 도시계획상 서울 편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되어 서울 편입 대상지에 포함되었습니다고 합니다. 추후에 서울시계 바로 옆 주거지로 개발될 시흥군 서면 광명리, 철산리, 하안리를 빼먹었던 건 에러였습니다.
도시공학을 전공한 박사가 출연한 모 팟캐스트에 따르면 1960년대 서울 대확장 추진 초기에 당국에서 눈독을 들인 곳이 경인선 지역(부천, 광명 북부, 부평, 인천 방면)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그 방침이 바뀌어서 부천군 소사읍이 반토막난 채로 동부지역이 서울로 편입되는 데 그쳤다는 야사가 있었습니다.
이때 경기도 김포군, 부천군, 시흥군, 광주군, 양주군 일대를 영등포구나 성동구, 성북구로 각각 편입하였는데 그중 편입된 광주군 일대와 시흥군 신동면은 바로 오늘날의 강남 지역으로 성장하였습니다. 60년대 사이 인구가 250만에서 550만으로 두 배 이상 증가하면서 확장이 불가피해졌습니다. 이와 같은 인구증가 추세를 당국이 의식한 듯이 당시 시골이었던 강남, 강서, 노원 등지 또한 서울로 편입시킨 것으로 보입니다.
김포군, 부천군, 시흥군을 쳐묵 편입해온 영등포구, 광주군을 편입해온 성동구, 양주군을 편입해온 성북구가 엄청나게 넓어졌습니다. 특히 성동구는 1975년까지 한강 남북에 모두 걸쳐있던 유일한 구였고, 영등포구는 1970년 인구조사 당시 1,182,759명으로 최다 치를 찍은 구였습니다. 당시의 영등포구는 약 60년 전의 인구가 현재 경기도 제1도 시인 수원, 광역시인 울산에 맞먹는 구였고, 이는 현재까지도 필적할 만한 자치구가 없는 수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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