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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속 도시 역사 문화32

한국의 도시 서울과 특별시 한국의 도시 서울과 특별시 한성, 경성과 같은 한문 지명은 공식 명칭으로만 사용되었을 뿐 조선 시대에 이미 백성들이 일상에서 서울을 칭하는 이름은 '서울'이었습니다. 1896년 발행된 최초의 순한글 신문인 독립신문이 발행지를 “조선 서울”로 적어 (대한제국 수립 이후 “대한 서울” 또는 “대한 황성”이라고 기재해) 발행했으며, 해당 신문의 영문판 역시 발행지를 “SEOUL, KOREA”로 기재하였습니다. 아울러 1899년 서울에서 최초로 개통된 전차 역시 태극 마크와 함께 “ELECTRIC DE SEOUL”이라는 현판을 달고 달렸습니다. 일제 강점기 한성부가 경기도 경성부로 개칭된 후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1920년 4월 1일 자 동아일보 창간호를 보면 창간호부터 신문의 영문 타이틀을 보면 T.. 2022. 8. 15.
한국의 도시 서울특별시 역사 - 1962년 대확장 한국의 도시 서울특별시 역사 - 1962년 대확장 1961년 5.16 군사정변 이후 서울특별시는 국무총리 직속이 되었으며, 서울 특별시장은 국무회의에 참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62년 12월 11일에 서울특별시 면적의 대대적인 확장이 이루어져 오늘날 서울시 모양새의 기반이 되고 있습니다. 이때에도 동이 아닌 리로 편입되었으며, 이듬해 2월 1일에 동으로 개칭되었습니다. 아카 라이브 '1963년 서울특별시 법정동, 행정동, 구 출장소' 당시 정부가 서울시 편입 대상지를 물색하기 위해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지리학과에 지역 조사를 위탁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대규모로 확장하고 나서도 뭔가 아쉬웠던지 1963년 9월 17일에 서울 편입을 염두에 두고 경기도 일부 지역도 서울시 도시계획에 포함시켰습니다.(건.. 2022. 8. 14.
서울특별시 6.25 전쟁 이후 부평 · 영등포 수도 이전 논의 서울특별시 6.25 전쟁 이후 부평 · 영등포 수도 이전 논의 서울 수복 이후에는 강북이 군사적으로 전방 지역에 있다는 문제와 전쟁으로 파괴된 서울 구 도심을 복구하는 대신에 아예 한강 이남의 새로운 땅에 신시가지를 조성하는 게 도시계획상으로 낫다는 의견이 대두되었기 때문에 기존의 서울 사대문 안 지역은 역사적 상징으로 남겨두고 아예 수도를 지금의 부평(구 부평도호부 지역 중 1940년 인천으로 편입된 곳.), 부천(지금의 시흥시 북부인 소래읍 포함.), 영등포(지금의 영등포구, 구로구 동부, 동작구 서부 일대. 다만 이 지역은 이미 행정상 6.25 전쟁 이전에 서울특별시로 편입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영등포는 행정구역은 서울 소속이었으나, 당시만 해주셔도 독자적인 지역 정체성이 남아있었습니다.).. 2022. 8. 13.
한국의 도시 서울특별시 역사 3편 (남북국시대, 고려) 한국의 도시 서울특별시 역사 3편 (남북국시대, 고려) 남북국시대 북한 산주는 통일신라의 9주 5 소경 중 한주(한산 주) 소속이 되었습니다. 지금의 종로구를 중심으로 한 강북 지역은 신라 초기 북한 산주(北漢山州)였다가 신라 경덕왕 때인 757년 전국 지명 한화 정책에 따라 한양 군(漢陽郡)으로 바꿉니다. 지금의 서울 강북 일대와 구리, 남양주 상당 부분(진접, 진건, 오남 제외)에 해당합니다. 이 한양이라는 명칭은 조선시대까지 관습적으로 자주 사용되었고 현대에도 한양대학교 등의 이름으로 남아있습니다. 한강 이남은 대략 반으로 나눠 동쪽은 지금의 광주시인 한 주 소속, 서쪽은 지금의 과천시인 율진 군 소속이었습니다. 고구려를 계승한다던 발해의 특성상 바로 그 고구려를 멸망시켰으니 신라와는 당연히 사이가.. 2022. 8. 12.